‘타오르는 사이프러스سرو سوزان’는 이란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시와 예술을 깊이 사랑한다.
기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검열된 예술과 문학이 지닌 변형적 힘과 해방성에 주목한다.
억압이 클수록 예술은 더욱 이단적인 목소리를 드러낸다고 믿는다.
*편집자말: 현재의 이란의 정치적 상황에서 ‘타오르는 사이프러스سرو سوزان‘ 필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닉네임으로 기고합니다.
2026년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분쟁은 세계 뉴스에서 그저 차가운 외교적 이익 계산처럼만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시설들이 폭격을 맞고 전면전의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그 진짜 대가는 온전히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다. 오늘날 이란 거리의 현실을 이해하려면 이란의 문학사, 그중에서도 이란 이라크 전쟁(1980~1988) 문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비극적이게도 중동의 슬픔은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여겨져 왔다. 아미르 무사비( Amir Moosavi)1는 저서 『가라앉지 않는 먼지(Dust That Never Settles)』2에서 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군이 죽지 않았고 서구의 영웅주의를 보여줄 틈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단 한 편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3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이란인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직접 써 내려가야만 했다. 오늘날 외세는 이란 사람들을 해방한다는 역설적인 핑계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 폭격을 맞으며 자유를 얻는다는 어두운 아이러니 속에서 사람들은 갇혀 있다. 이란 민중은 억압적인 자국 정부의 피해자인 동시에, 민간인의 목숨을 그저 부수적인 피해로만 여기는 외세의 비인간적인 군사 작전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이란 정부가 어떻게 국가적 의식을 1980년대라는 영원한 시간의 굴레 속에 가두어 두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라크와의 8년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이란 가정의 벽에는 가족을 잃은 영원한 슬픔의 상징으로 아들, 형제, 혹은 아버지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살아남은 이들도 팔다리를 잃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또한 이라크가 이란의 군대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쏟아부은 겨자가스, 사린, 타분 같은 화학 무기 때문에 폐가 망가진 채 돌아온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신경 가스의 끔찍한 후유증은 오늘날까지도 선천적 기형이라는 형태로 나라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중동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는 국제 사회는 이 전쟁 범죄를 대부분 모른 척해 왔다. 이란은 20세기에서 가장 긴 정규전을 치렀지만, 국가의 심한 검열과 통제 탓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쟁 문학이 곧바로 나올 수는 없었다.
이란 전쟁 문학은 국가의 선전 도구에서 시작해 현실을 비판하는 사실주의로 발전하는 뚜렷한 과정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 문학은 주로 사람들을 동원하고 전쟁 참여를 부추기는 도구로 쓰였다. 국가는 전쟁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독점하며, 이를 공식적으로 ‘성스러운 방어(Defa-e Moghaddas)’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가진 전략적인 천재성은 비판을 완전히 막아버린다는 데 있다. 어떤 방어가 성스럽다고 선언되면, 이를 비판하는 것은 곧 신성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이 독점적인 이야기를 강요하기 위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책들의 출판을 막았다. 그래서 독립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작가들은 전쟁의 인명 피해를 분석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를 그저 ‘전쟁 문학’이나 ‘저항 문학’이라고 부른다.
국가의 이야기는 흑백 논리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요구했다. 이 안에서 이란 군인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결점 없는 순교자였고, 전쟁의 명분은 본질적으로 신성했다. 이러한 엄격한 검열은 문학에 거대한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적에게 포로로 잡힌 이들, 특히 여성들에 대한 깊이 있는 포로 문학은 문학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포로가 겪은 고통과 학대는 문화적으로 깊은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에, 이를 다룬 대표적인 문학 작품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중요한 역할과 그들만의 특별한 고통은 체계적으로 지워졌다. 검열당하고 무시당한 이 여성들은 두 번이나 입이 막혔다. 처음에는 그들을 붙잡은 적에게, 다음에는 자신의 조국에게 침묵당하며 거대한 역사 속에서 완전히 희미해지고 잊혔다.
진짜 전쟁 소설을 출판하려는 노력은 일찍부터 시작되었지만 금세 억압당했다. 1982년에 나온 아흐마드 마흐무드(Ahmad Mahmoud) 의 『그을린 대지(Zamin-e Sukhteh)』는 전쟁을 다룬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소설 중 하나다. 이라크의 침공이 시작된 무섭던 첫 몇 달간의 아흐바즈(Ahvaz) 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민간인들의 공포와 서민들의 생존기를 거칠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국가 기관은 재빠르게 이 책을 판금하고 소외시켰다. 그 이유는 완전히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마흐무드 소설의 인물들은 국가가 강요한 종교적 열정이나 순교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라, 강렬하고 세속적인 민족주의와 가족의 집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싸웠기 때문이다.4 『그을린 대지』가 거부당한 사실은, 아무리 애국심이라 해도 정권의 정확한 종교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전후 시대로 수십 년이 흐르면서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참전 용사 출신인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은 국가를 향해 문학적 이단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억지로 강요된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결점 없는 성스러운 전사의 신화를 깨뜨리고자 했다. 작가 아흐마드 데흐간(Ahmad Dehghan)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을 통해 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고 노골적인 사실주의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성스러운 방어라는 최면에서 깨어나도록 충격을 주었다. 소설 『270도 방향으로의 여정』(1996)에서 데흐간은 탱크에 몸이 잘린 군인을 묘사하며 타 들어가는 인육의 냄새와 피가 뿜어져 나오는 동맥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폭력에서 정화라는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육체란 그저 살점과 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흐간은 단편 소설 「내가 당신의 아들을 죽였습니다」(2004)에서 이를 더 밀어붙인다.
이 작품에서 한 이란 참전 용사는 슬픔에 잠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의 아들이 적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부상당한 전우가 무의식중에 내는 숨소리 때문에 부대의 위치가 들킬까 봐, 자신이 직접 전우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것이다. 이는 영광스러운 순교의 신화를 산산조각 내고, 그 자리를 고통스러운 도덕적 타협과 잔혹한 생존 본능으로 채운다.결과적으로 데흐간의 이 두 작품은 출간 직후 국가에 의해 판금 조치되었으며, 각종 도서전과 문학 축제에서도 철저히 보이콧당했다. 이러한 성스러운 이야기의 파괴는 금서로 지정된 호세인 모르테자이안 아브케나르(Hossein Mortezaeian Abkenar)의 2006년 소설 『안디메슈크 철도 계단의 전갈』에서 끝을 보여준다. 아브케나르의 소설은 깨끗하게 포장되고 신성시된 참호의 이미지를 완전히 부순다. 주인공 모르테자(Morteza)는 자발적인 순교자가 아니라, 어떻게든 전쟁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겁에 질린 징집병이다.
이 소설은 죽음을 환영하는 성스러운 전사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갇혀버린 끔찍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병사들은 참호 안에서 마약을 쓴다. 더 나아가 이 글은 문화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깊은 금기를 깨고, 동성애를 묘사하는 짧고 간접적인 장면 두 개를 포함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위안을 얻기 위해 나란히 누워 서로를 껴안는 징집병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작가들은 이처럼 전쟁의 신성한 이야기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가의 금지와 보이콧을 당했다. 아브케나르는 이란 징집병을 불의 고리에 둘러싸인 전갈로 묘사한다. 탈영을 시도하다 잔인한 자국 헌병대에게 쫓기는 이들은, 피할 수 없는 미친 악몽 속에서 스스로를 독침으로 찔러 죽이는 전갈과도 같다.5
하지만 전쟁의 비극은 총성이 멎는다고 끝나지 않으며, 무사비가 말했듯, 그것은 ‘느린 폭력’으로 모습을 바꾼다. 6이러한 생태적 트라우마는 나심 마라시(Nasim Marashi)의 2017년 소설 『가지치기』에 아주 잘 담겨 있다. 소설은 미사일 공격으로 어린 아들을 잃고 정신이 무너진 어머니 나발(Naval)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마라시는 이란 이라크 전쟁의 트라우마를 1990~1991년 걸프전과 연결하며 이란 전쟁 문학의 한계를 넓힌다.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유전에 불을 질렀을 때, 이란 국경 너머로 독성 가득한 검은 비가 쏟아졌다. 기름투성이의 끔찍한 이 비는 나발에게 심각한 정신적 붕괴를 일으킨다. 이 소설은 후제스탄 습지의 불타고 머리가 잘린 야자수와 기형이 된 물소 등 상처 입은 땅을 묘사하며, 파괴된 이란 사람들의 몸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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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마라시의 소설 속 검은 비의 이미지는 더 이상 역사적인 문학적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 그대로의 재앙적인 현실이다. 2026년 3월 7일, 이스라엘과 미군은 이란의 시설들, 특히 테헤란 북서부 샤흐란(Shahran)에 있는 핵심 연료 공급 기지를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이 파괴적인 공습으로 인해 유독한 검은 기름 비가 9백만 명이 사는 도시 위로 실제로 쏟아져 내렸다. 1990년대 쿠웨이트의 검은 비가 그랬듯, 암을 일으키는 이 낙진을 들이마신 이란의 새로운 세대는 암과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게 될 운명에 처했다. 공습을 하는 외세는 종종 자신들의 공격을 독재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포장하며, 이란 사람들의 구원자인 척한다. 하지만 이는 구원자의 탈을 쓴 악마라는 최악의 아이러니다. 유독한 연기에 숨이 막히고 생계를 잃으며 자식들을 묻어야 하는 이란의 민간인들에게 정치적인 명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한다는 핑계를 대는 자들에 의해 온갖 가능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 어두운 시대에 이란 정부는 1980년대와 똑같이 절대적인 검열을 통해 통제력을 유지하려 한다. 과거 정권은 하나뿐인 서사를 강요하기 위해 이란 이라크 전쟁 문학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았고, 성스러운 방어를 비판하는 자를 신성모독으로 몰아갔다. 오늘날에도 정부는 사람들의 절규를 입막음하기 위해 심각한 인터넷 차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문학은 인간의 회복력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목소리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방향이 바뀔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항상 밖으로 나갈 길을 찾고야 만다.
이란 이라크 전쟁 문학은 거대한 정치적 이야기가 무고한 이들의 짓밟힌 몸을 필연적으로 가려버린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이란 민중은 치명적인 십자포화 속에 갇혀 있다. 국민을 1980년대의 전시 순교라는 굴레에 가두는 국가의 인질이 된 동시에, 환경 파괴와 세대를 잇는 질병만을 안겨주는 외세의 비인간적인 전술에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 이념과 지정학적 계산이 남긴 것은 결국 죽음과 병든 대지뿐이다. 하지만 이란의 전쟁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쏟아지는 검은 비와 숨막히는 억압 속에서도, 사람들은 끝내 살아남아 그 모든 비극을 다시 문학으로 고발하리라는 것이다.
- 아미르 무사비는 럿거스 대학교 뉴어크 캠퍼스(Rutgers University–Newark) 영문학과의 비교문학 조교수이다. 이란, 이라크, 레반트 지역을 아우르는 현대 중동의 문화사와 현대 아랍어 및 페르시아어 문학이 그의 주요 연구 분야다. 특히 양국의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통해 국가 주도의 서사에 맞서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남긴 상흔을 다루어 왔는지에 대한 비교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
- Moosavi, Amir. Dust That Never Settles: Literary Afterlives of the Iran-Iraq War.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25. ↩︎
- Ibid., 6-7. ↩︎
- Ibid., 42-44. ↩︎
- Ibid., 113-120 ↩︎
- Ibid., 16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