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누군가는 살아남는 게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중에서
바리케이드의 창간호에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퀴어 페미니스트 연극기획자 나희경이다. (바리케이드 편집자 권은비는 나희경에게 ‘행동주의적 창작자와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는 공론장을 누군가는 만들어 주길 바라며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만들길래 답답해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고 소개하며 원고를 청탁했다. 하지만 나희경은 원고 쓰기는 싫고 인터뷰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권은비가 나희경에서 구구절절 사례비에 관해 설명 하자 나희경은 거두절미하고 돈은 필요 없다며 인터뷰 장소까지 스스로 섭외하는 기염을 발휘했다.)
나희경의 특기는 깃발 흔들기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는 일에 특화된 사람, 차별과 혐오가 넘실거리는 땅 위에서 ‘퀴어 페미니스트’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나희경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나희경은 자리에 앉으며 재켓의 양쪽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천혜향을 두 개 꺼내 내밀었다. 우리는 귤을 까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 대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게재하고자 않다.
바리케이드(이하 바리): 시작은 좀 식상하게 해볼까 해요. 자기 소개 해주세요.
나희경(이하 희경): 저는 보통 ‘연극하는 퀴어 페미니스트 나 PD’라고 소개해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X 등 소셜 네트워크에도 이렇게 쓰고 있어요. 사람들이 퀴어 페미니즘 연극 작품 앞에 ‘퀴어’나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딱 붙이는 것에 대해서 약간 좀 아리까리해 할 때, 저는 ‘퀴어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가 깃발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깃발을 올려서 “야! 여기다. 일로 와라”하고 퀴어와 페미니즘의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올 수 있게 표시를 해준다, 그런 느낌으로 저를 소개해요. 연극 기획이 본업이고요.
팀이나 극단과 이야기하면서 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같이 만들기도 하고, 제가 먼저 텍스트나 이런 이야기가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작품 개발부터 기획을 하고 있어요. 또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KQTA)1’에서 몇 년 전 부터 아카이버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요즘은 어떤 판이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고 주력하고 있어요.
저에겐 이런 감각이 있어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 사이에 퀴어 페미니즘 연극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잡은 사람들과 이제 막 연극을 만들고 싶어서 진입하는 사람들 사이에 단절이 느껴져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거죠. 분명히 이전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자원 또는 기반이 있는데 그것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공간을 운영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어요.
바리: 그래서 2025년에 7월에 ‘퀴어페미연극센터2’를 만들게 되었나요?
희경: 연극센터나 어떤 ‘센터’라는 이름 붙인 곳들이 대체로 공공기관에서 만든 곳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퀴어 페미니즘 연극’하는 사람들, 보는 사람들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센터’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관객 모임도 하고 창작자 모임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지원금 못 받고 공연하려는 퀴어 페미니즘 연극 창작자들이 많아요. 이 동료들에게 좀 저렴하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관 하거나 연극 연출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에 공간을 제공하거나,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하고 있어요.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긴 해요. 그런데 또 쉽진 않아요. 이런 공간이 필요해서 시작했지만, 활동하면서 공간에 메인다는 이야기도 되는 거니까. 기존의 다른 공간들이 역할을 못 해주고 있으니까, 필요하니까 일단 해보자, 뭐 이런 감각이었어요. 그런데 ‘퀴어페미연극센터’도 어쨌든 지원사업 덕분에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거예요. 3년동안 지원받을 수 있는 사업인데, 어떤 면에서는 상징적으로 뽑혔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양성을 담당하는 한 상징적인 존재로서 공모 사업 안에서 놓였었다고 그냥 저는 짐작해요. 이건 그냥 제 뇌피셜이고, 일종의 자기검열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그런 상징으로서 우리가 뽑힌 거라면, 그 자원을 어떻게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바리: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제도권이 온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차별적일 때가 오히려 많죠. 그런 제도권 안에서 말씀하신 대로 ‘퀴어 페미니즘’ 깃발을 들고 활동하는 게 처음부터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땠어요?
희경: 아, 그럼 블랙리스트3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
바리: 무려 11년 전…
희경: (희경 멋쩍어 하며) 그러니까 그때 블랙리스트 터졌을 때, 팝업씨어터 사태4가 있었어요. 저도 창작산실 작품 중 하나에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대학로 극장 앞에서 피켓시위도 하고. 어쨌든 블랙리스트라는 거대한 압력 안에서 저도 계속 있었으니까 그게 저한테 컸던 것 같아요. 연극계 안에서 운동의 경험이 생긴 거죠.
바리: 그리고 미투가 있었죠.
희경: 맞아요. 블랙리스트가 2015년, 미투운동이 2018년. 그러면서 저의 ‘디스’가 시작된 것 같아요.
바리: 디스?
희경: 제가 기금 사업이나 문화정책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SNS상에서 말을 많이 했거든요.
바리: 문제제기를 한 거죠?
희경: 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참 청년지원 사업들을 만들던 때가 있었어요. 그 전후로 제가 자문을 많이 다니게 되었어요. 사업이나, 공간 만들 때 자문 같은 거 하잖아요. 그때 제가 20대였는데 그때만 해도 20대가 혼자 연극기획을 하는 경우가 많진 않았어요. 청년으로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SNS상에서 제가 하도 이것저것에 대해 떠들어 대니까 그래서 저를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 같아요.
바리: 개인 SNS에서 문제제기하는 게 상당히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전략이죠.
희경: 맞아요. 블랙리스트와 미투운동을 경험하면서 진상규명을 하고 함께 연대하던, 승리의 기억들이 저한테 쌓였어요. 일단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못 참는 것도 있어요. (웃음) 어쨌든, 페이스북에 ‘대학로X포럼’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블랙리스트 때도 ‘대학로X포럼’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했거든요. 블랙리스트 이후에 정권이 바뀌고 서울문화재단에 신임대표가 오고 이런저런 개편을 하면서 지원사업들의 발표가 일괄적으로 늦어진 적이 있었어요.
사람을 무리해서 인사이동 시키고, 여기저기서 일이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너무 열 받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지원사업들이 작품 공모를 언제 받고 언제 발표했는지를 일괄적으로 엑셀로 정리해서 ‘대학로X포럼’에 올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상함이 느껴지긴 하는데 말하기를 주저하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연극인들은 공모사업 신청 주체인 경우가 많아서 조심스러워했는데, 저는 독립 PD니까 좀 더 자유로웠던 것도 있어요. 내가 얘기해도 나한테 불이익을 못 줄 거란 생각이 있었죠.
바리: 그러니까 나PD님이 취하는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이?
희경: 저는 폭탄 던지기 전담.
바리: 그렇게 싸움을 시작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잖아요. 자료조사나 사실관계도 따져봐야 하고, 뭐가 문제 인지 글을 쓰고…
희경: 아니요. 저는 일단 질러요. 그냥 정말 짧은 글이라도 질러요. 글을 잘 쓰려고 하면 시작도 못 할뿐더러 너무 늦어요.
바리: 싸움의 1단계, 일단 문제제기를 한다?! 그런데 늘 싸움에서 승리하진 않잖아요.
희경: 그쵸. 근데 무언가 포착됐다. 그럼 주변동료들에게 물어봐요. ‘내가 이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좀 아닌 것 같아, 넌 어떻게 생각해?’ 주변에서도 ‘맞다, 문제 맞다’하면 (폭탄) 간다. 저는 일종의 1차 스피커 역할을 하는 거에요. 근데 제가 뭘 엄청나게 지속적으로 파고들 만큼 여유가 있진 않잖아요. 공연 들어가면 그럴 정신도 없고. 그런데 저는 PD라 늘 각종 SNS상에서 홍보 하잖아요. SNS가 일종의 공론장이기도 하고요.
바리: 매번 싸움은 시작하되 결과에 매몰되진 않는다, 이게 나PD님의 전략 같네요. 투쟁이나 운동을 하다 보면 결과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패감이 들기도 하잖아요.
희경: SNS가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건 맞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페이스북보다 인스타그램을 선호하게 됐잖아요. 대표적인 연극계의 공론장이 ‘대학로X포럼’이었는데 그게 페이스북 그룹이에요. 인스타그램은 그 정보가 시간순으로 뜨지도 않을뿐더러 광고가 많고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되죠. 예전 트위터, 그러니까 지금의 X 는 정보는 많은데 정보가 흘러 내려가 버려요. 이렇게 주된 소셜 네트워크의 플랫폼이 변하면서 정보에 있어서 세대 간의 단절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학로X포럼’은 시간의 흐름을 축적하고 있어요. 그 안의 흐름을 보면서 이전 세대가 문제에 대응해왔던 방식, 그래서 그것에 따른 결과가 어땠는지, 이런 일종의 역사들이 저한테 자연스럽게 쌓여 있어요.
그게 활동의 자원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연극계로 진입하는 세대에게는 그런 과거의 유산이 전달되기가 어려워요. 물론 블랙리스트, 미투운동이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해 왔는지, 어떻게 운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공유되기가 어렵죠.
바리: 연극계 미투가 2018년 일이니까…
희경: 예를 들어, 새로운 세대에게 누가 가해자고 누가 2차 가해를 했었는지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가해자들이 운영하는 연극연습실, 극장을 대관해도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연극계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이어온 유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코로나가 촉발 시킨 단절도 크고요.
바리: 구체적으로 어떤 단절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희경: 2025년에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차별금지법과 연극 만들기’5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이게 사실 엄청 큰 이슈가 될만한 거였거든요. 왜냐면 2015년에 팝업씨어터 사태가 있었잖아요. 그때 한국공연예술센터(현재 대학로예술극장)가 극장이나 공연장이 아니라 씨어터카페(대학로예술극장에 1층에 위치했던 카페)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획 했어요. 그런데 그때 일부러 공연을 방해하고 조직적으로 훼방을 했어요.
팝업씨어터 사태 이후 2023년 씨어터카페가 씨어터광장이 되었고, 그곳에서 서울변방연극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결단이고 의미인데 거기에 참여한 젊은 창작자들이 이게 무슨 맥락이고,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거예요. 변방연극제에서 이번에 했던 행사 내용도 퀴어검열에 관한 이야기라 더 의미가 컸거든요.
이 맥락을 알려면 블랙리스트와 팝업씨어터 사태를 알아야 하고 지금의 변방연극제의 예술감독이 김진이6라는 걸 알아야 하고 팝업씨어터 사건 때 내부고발을 진이 씨가 했었다는 걸 알아야 하니까요. 진이 씨한테는 정말 큰 일이었을 텐데… 다양한 감정들이 밀려오더라고요.
“2015 년. ‘팝업씨어터 공연방해 및 검열’이 있었던 씨어터카페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씨어터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2025 년 오늘 서울변방연극제가 기획한 [계간 변방]이 진행되었습니다. 블랙리스트 검열이 있던 자리에서, 퀴어 검열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씨어터광장 소개에서 블랙리스트, 검열, 팝업씨어터 같은 단어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지만 오늘 그곳이 정말로 ‘광장’이 되었습니다.”
-나희경 페이스북 게시글 중
바리: 블랙리스트를 함께 경험한 동료로서 마음이 많이 쓰였군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PD남에게는 관계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와 동료, 내 주변 이루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나PD님만의 관계 맺기 방법이 궁금해요.
희경: 깃발을 흔드는 거죠. 저의 관계는 공론장 안에서 많이 만들어졌어요. 블랙리스트와 팝업씨어터, 미투운동을 거치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작업도 같이하게 되고. 어쨌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벽을 하나 허물고 들어가는 것도 있고,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알게 되는 거죠.
바리: 저도 뭔가 연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주변에서 다 하지 말라고…
희경: 왜요?
바리: 결국엔 다 싸우고 상처받고 끝난다고…
희경: 하하하하! 저는 그렇게 공론장에서 알게 된 동료, 관객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제가 2016년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7’을 계기로 ‘나는 이제 퀴어,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을 하겠다’고 제 SNS에 올리고 그런 작업들과 계속 작업해 왔거든요. 작품을 할 때마다 저는 매표소에서 관객들을 만나요. 한두 마디 인사하다가 관객들이 페미씨어터8 후원회원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가 페미니즘연극제를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연극제에서 관객 발제도 기획하고 또 그렇게 만난 관객들과 관계도 쌓이는 거죠.
바리: 뭔가 조직적으로 단단하게 묶인 관계망이 아니라 굉장히 느슨하면서 일시적인 관계일 수도 있겠네요.
희경: 네. 맞아요. 연극계 안에서는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기 전에 흩어져요. 다들 작업하고 바쁘잖아요. 계속 모이는 게 아니라 사안별로 모이고 흩어져요. 저같이 일단 잘 열받는 사람들이 뭔가 말하고 실행력 있는 누군가 판을 만들면 사람들이 왔다가 흩어지고, 그러다가 흐지부지되기도 하고.
바리: 나PD님이 깃발을 흔드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만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투쟁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쌓이면 관계에 집착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섭섭해지고 상처받기도 하고.
희경: 근데 저는 여러 번 경험하다보니까 모였다 흩어지는게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아요. 제가 깃발을 흔드는 건, 그게 저한테 안전하고 저에게 필요해서 깃발을 드는 거에요. 내가 퀴어페미니즘 연극을 더 많이 보고 싶은 것처럼, 누군가도 저처럼 그런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 물론 답답할 때도 있죠. 시간이 갈수록 제가 만나는 창작자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어요. 뭔가 바꾸고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제가 만나는 젊은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게 쉽지 않아요.
바리: 이거 자칫하면 꼰대 소리 들을 수도 있겠는데… (웃음)
희경: 네. 이게 지금 나의 화두야!(웃음) 올해의 저의 목표가 연극하는 ‘퀴어페미꼰대 언니’가 되는 거에요. 하하하! 왜냐하면 제가 아까부터 이야기한 세대 간의 단절이 있잖아요. 이전 세대의 연극인들과의 연대가 나의 자산이 되었는데 지금 창작자들한테는 그런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는 좀 연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서울문화재단 정기공모에서 청년 중심인 A트랙 예산만 안 늘어났어요. 당사자들은 지원사업 간담회 같은 데 갈 시간도 없고,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 인식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다 보면 퀴어, 페미니즘 연극이고 나발이고 시작도 못할 수도 있는 거에요. 앞으로도 퀴어 페미니즘 연극이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전에 청년지원사업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청년이 아니니까 관심 없고, 이제 진입하는 사람들은 처음이니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문제제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근데 저는 이게 너무 답답하고 열불 나니까 꼰대가 되는 거죠.
바리: 내가 청년일 때 청년지원 받아서 퀴어 페미니즘 연극한 것처럼 지금 세대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오, 그런 꼰대는 좀 좋은데?!
희경: 이건 저의 또다른 뇌피셜인데 코로나 시절에는 계속 비대면 수업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공동으로 뭘 했던 경험이 많이 없고, 하다못해 그냥 내가 연극하고 싶으면 그냥 인스타 DM이나 뭐 전화번호라도 어떻게 알아서, 오퍼라도 좋으니 한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 배우고 싶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이걸 아무도 못 해요. 아무도 안 해요. 너무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고 얘기도 들었어요. 그렇구나! 그러면 어떻게 연결하지?
그래서 제가 오픈톡 방도 만들었는데 그 방에 지금 한 210명 정도 있거든요. ‘퀴어 페미니스트 엘라이 창작자 오픈톡’을 만들어서 사람들 초대하고 서로의 존재라도 알아라! 그리고 공연소식이나 정보 있으면 올려라, 그런 식으로.
그럼 이제 오픈톡방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니까 관심 있으면 톡으로 말을 걸 수 있잖아요. 창작자들끼리도 잘 모르니까, 이 사람들끼리는 좀 알 수 있게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거죠. 소통창구 하나 만들어놓으니까 정보가 활발히 올라와요. 어쨌든 공연 홍보해야 되니까. 그리고 사실 이 창작자들이 서로의 관객이기도 하잖아요.
바리: 자, 그럼 슬슬 태국 GL에 빠진 이야기를 해볼까요?
<2부에서 계속됩니다>
-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KQTA)는 퀴어연극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이홍도(극작가), 강윤지(연출가), 연혜원(관객), 나희경(기획자), 김민조(비평가) 등이 2022년부터 준비하여 2023년에 결성한 아카이빙 그룹이다. 한국 퀴어연 극을 조직화, 역사화, 계보화하는 작업이 부재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참조: https://queertheater.kr) ↩︎
- 퀴어페미연극센터는 퀴어페미니즘 연극 창작과정을 지원하고 , 퀴어/페미니스트/앨라이 창작자와 관객들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운영은 페미씨어터에서 한다. 페미씨어터는 “페미니즘 연극 제작 및 확산‘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인용: https://blog.naver.com/playforlife/224006413131, 후원 및 참조: https://linktr.ee/playforlife ) ↩︎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 예술위 등이 긴밀하게 협조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대규모 국가범 죄였다. 2015년 9월 9일, 마침내 검열 의혹이 언론에 폭로되자 블랙리스트 배제 압력에 시달리던 직원들은 블랙리스트에도 없던 인물이나 작품을 배제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작동시켰다. 블랙리스트를 편리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예술위가 가장 먼저 강구한 제도의 변화는 2015년 7월에 책임심의위원 제도를 폐지하고 심의위원 풀(pool)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문화예술단 체를 중심으로 친정부적 심의위원들을 위촉하고 사전에 배제 시나리오를 협의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공모제를 통한 지원심 의 방식이 블랙리스트 배제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보다 원천적인 배제를 위해 기획사업 위주로 지원제도를 개편 하기에 이르렀다.’ (인용: 김미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동 방식에 관한 연구 -연극계를 중심으로, 2021 vol.1, no.77, pp.153 – 209) ↩︎
- ‘팝업씨어터 사건’은 2015년 10월 17일에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 카페’에서 공연된 김정 연출가의 <이 아이>에 대 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공연 방해를 모의하고, 다음 날인 10월 18일에 조직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공연을 방해한 사건이다. 김정 연출가 다음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윤혜숙, 송정안 연출가에게는 예술위가 사전 대본 제출을 요구함으로 써 검열 논란까지 불러일으켰고, 두 연출가는 이를 거부하며 공연을 보이콧했다. 팝업씨어터 공연에 최종 섭외된 김정, 윤 혜숙, 송정안은 블랙리스트에 없었는데도 <이 아이> 첫 공연을 지켜본 예술위 직원들은 단지 ‘세월호’를 암시하는 내용이 있 다는 이유만으로 사전 모의를 거쳐 공연을 방해한 것이다. 예술위는 2019년 7월 19일에 사건 현장인 씨어터카페에서 피해 예술인들 및 동료예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예술위의 공개 사과는 피해예술가들을 위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인용: 김미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 양상 및 후속 조치에 관한 연구(1) – 팝업 씨어터 사건, 한국연극학 83권 5-52(48pages) 2023.04) ↩︎
- 서울변방연극제는 2025년 8월 대학로예술극장 1층 씨어터광장에서 ‘계간변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차별금지법과 연극만들기의 과정에 대해 다양한 창작자, 퀴어, 활동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
- 2021년부터 서울변방연극제는 ‘사회적 고통이 예술로 발화하는 과정을 탐구해오며 서울변방연극제의 정체성을 이어줄’ 예술 감독으로 김진이를 선임한다. 김진이는 공공극장 출신 독립프로듀서로 ‘세월호 기획공연’, 미군위안부 여성노인들의 삶을 다 룬 ‘문 밖에서’외 다수의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
-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성민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는 대표적인 여성혐오 살인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추모와 분노의 마음을 담은 포 스트잇을 강남역에 붙이며 여성운동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미투운동, n번방 사건, 교제폭력 등의 여성문제를 사 회의 중대한 문제로 확산되기도 했다. ↩︎
- 페미씨어터는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무지개빛 연극’을 만드는 단체다. (후원링크 https://secure.donus.org/arko/pay/step1_direct?dontype=B01034&background=B01034) ↩︎
